헤르만 바빙크 주제별 선집(6권)은 단순히 해당 작품 소개를 위해 기획되지 않았습니다. 본 시리즈의 목적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당시 전통적인 기독교가 외면을 받는 상황 속에서 카이퍼와 함께 기독교 본질에 기반을 두면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칼빈주의 부흥을 이끌었던 바빙크의 이상을 오늘날 많은 도전을 받고있는 한국교회를 위해 재조명하는 데 있습니다. 특별히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관심있는 모든 분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제와 각주를 매우 자세하게 제시했습니다.
1권 『기독교의 본질: 그리스와 기독교』는 18세기 이후 고등비평과 첫 번째 역사적 예수 탐구 등장 가운데 저마다 새로운 기독교의 본질을 주장하였고 특별히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 강연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을 때 기독교의 참된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바빙크의 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주의 가르침을 믿는 다른 종교와 달리, 예수님을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신앙이 어떻게 유일한 독특한 기독교의 본질이 되고(“기독교의 본질”) 이에 대한 성경적 증거(“그리스도와 기독교”)와 이로부터 기독교 신학이 어떻게 발전되었고 기독교 역사를 형성했는지(『기독교』)에 대해서 바빙크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추천사 1 정홍열 박사│아신대학교 총장
추천사 2 임덕규 목사│충성교회 담임
추천사 3 이정훈 목사│네덜란드 즈볼러한인교회 담임
헤이스베르트 판 덴 브링크(Gijsbert van den Brink)의 번역 시리즈 서문
행크 판 덴 벨트(Henk van den Belt)의 『기독교』 소개
역자 서문
서론
1. 주제별 선집 시리즈 목적
2. 바빙크 주제별 선집(전 6권) 권별 목차
3. 바빙크 주제별 선집 권별 내용
4. 빙크 저서와 관련된 신칼빈주의연구소와 참고 문헌 소개
제1부 『기독교』(Het Christendom, 1912)
제1장 해제와 서평
1. 본문 해제
2. B. B. 워필드의 『기독교』에 대한 서평
제2장 기독교(Het Christendom)
1. 기독교의 본질에 관한 탐구
2. 예수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대한 성경의 증거
3. 기독론: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에서 시작된 두 본성 교리
4. 초기 기독교 형태 중 대표적인 서방 기독교와 동방 기독교
5. 종교개혁의 정신과 역동성
6. 종교개혁 이후 19세기까지 기독교와 연관된 분파들과 사상들
7. 기독교의 생명력과 전망
[부록] B. B. 워필드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결론(바빙크 글 인용)
제2부 기독교의 본질(“Het Wezen des Christendoms,” 1906)
제1장 기독교의 본질” 해제
1. 교회 교리를 떠난 기독교의 본질에 관한 연구 동향 및 연구 방법론
2.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과 교회 기독론과의 차이점
3. 존 볼트의 “기독교 본질”에 대한 영문 번역본 소개
제2장 기독교의 본질(“Het Wezen des Christendoms”)
1. 18세기 이후 근본적 의심 가운데 진행된 기독교의 본질에 관한 연구 경향
2. 기독교의 본질 연구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 슈트라우스
3. 하르낙의 기독교 본질에 대한 강연과 개념
4. 교회 교리를 떠난 기독교의 본질에 관한 연구의 실재
5. 기독교의 본질에 관한 연구에서 경험론적·관념론적 귀납적 방법의 한계
6. 기독교의 본질에 대하여 다른 관점을 가진 신학과의 관계
7.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8. 부인할 수 없는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예수의 자의식
9. 예수 그리스도 그 인격 자체를 아는 믿음의 절대적 중요성
10. 신학의 출발점과 직무
제3부 그리스도와 기독교(“Christ and Christianity,” 1916)
제1장 해제
제2장 그리스도와 기독교(“Christ and Christianity”)
1. 기독교의 구별되는 본질: 기독교에서의 그리스도의 위치
2.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의 중요성
3. 주관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의 객관적인 신학적 측면에서의 타당성
4. 예수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성경적 증거
5. 결론과 적용
부록: 참고 내용
기독교와 기독교의 본질적 주장들을 소개하는 바빙크의 신학이 박철동 박사님을 통해 친절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이름에 걸맞은 기독교의 본질을 독자들이 맛보고 경험하게 될 줄 확신합니다.
정 홍 열 박사│아신대학교 총장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인격에 대한 기독교 본질의 이해로부터 시작해서 종교개혁의 성격과 그 이후의 발전에 대한 많은 통찰력을 얻을 것입니다. 특히, 바빙크가 저술한 본문에는 소제목이 없으나, 소제목을 붙이고, 문단을 나누어 읽기 쉽게 하며, 친절하고 또한 신학적 이해가 깊은 각주를 달아서 더 깊은 기독교 진리에 인도하고 있습니다.
임 덕 규 목사│충성교회 담임
바빙크 박사가 기독교가 무엇인지 그리고 (종교 소개) 시리즈에서 기독교를 다른 “위대한 종교들”(Groote Godsdiensten)과 비교하여 설명하는 모두를 62페이지의 작은 분량으로 수행한 것은 결코 작은 작업이 아닙니다. … (짧은 분량으로 기독교를 소개할 때) 우리는 이 작품 이상으로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벤자민 B. 워필드│『기독교』에 대한 리뷰 中
우리는 바빙크가 시대적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배워야 합니다. 그는 피상적인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고 성경과 교회의 신학적 전통에 뿌리내린 건전한 신학을 발전시켰으며, 그 유리한 지점에서 당시의 영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 바빙크의 번역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기쁨과 인내로 신앙의 여정을 이어가는 데 격려와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G. 판 덴 브링크│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교수
“위대한 종교들” 시리즈 저자들이 물의를 일으켰지만 바빙크가 『기독교』 출판에 기꺼이 동의한 것은 평화를 추구하는 그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 기독교인으로서 바빙크는 이 주제에 관한 개인적인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비그리스도인들 역시 이 주제에 관해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움은 사람을 눈멀게 하지만 사랑은 종종 대상을 더 선명하게 보게 합니다.”
H. 판 덴 벨트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아펠도른신학대학교 교수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도전들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칼빈주의 부흥을 이끌었던 바빙크의 관련 저서들을 살펴보면서 의미 있는 통찰력을 얻는 것이 본 시리즈의 목적입니다. 첫째, 이 시리즈는 기독교의 본질을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성도들의 신앙과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그리스도께로, 특별히 창조와 재창조의 영원한 중보자인 그리스도께 더욱 돌아가는 데 중점을 둡니다. 둘째, 이러한 기독교의 본질을 배경으로 이 시대의 영의 영향을 식별하고 평가하여 우리가 직면한 영적 싸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셋째,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의 보편성 속에서 개인과 교회와 국가의 소명과 부흥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_27-28p
다행히 바울과 요한의 기독론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무관심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에게 예외적인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는 그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인류의 종교적·윤리적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중요성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약한 신앙의 형태에서도, 기독교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질문이 결국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사역에 대한 질문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신앙고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질문이 종교와 신학의 주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주요한 질문으로 유지됩니다._79p.
보통 저등 종교들(정령 숭배, 영매술, 물신 숭배)에는 여전히 위대한 영, 높은 아버지, 위대한 주 등으로 불리는 최고의 존재에 관한 인식이 포함되어 있지만, 최소한 이것은 특별히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죽은 믿음에 해당합니다. 사실상 그들의 종교는 미신과 주술에 빠져있습니다. 반면, 고등 종교에는 (하나님의 일반은혜를 통해 주어진) 고귀한 특성들이 있으므로 단순히 기독교와 고등 종교는 적대적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특성들은 기독교에서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에) 선교를 위한 다양한 접촉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종교들은 기독교와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차이점은 그들의 창시자들에게 부여하는 위치와 중요성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중국 종교에서 공자, 불교에서 고타마, 이슬람 종교에서 모하메드는 구원을 위한 어느 한 길을 제시한, 매우 큰 은사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들을 위하여 제시한 구원의 길을 따라야 하며, 이때 비로소 궁극적으로 자신의 구세주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는 자력 구원(autosoteric)의 종교입니다._98-99p.
루터의 종교개혁 활동이 일어났던 원리는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루터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바울이 복음 속에서 증거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의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회심하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루터가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해석으로 로마서 1장 17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관점을 제시했느냐 여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인리히 데니플레(Henry Denie)는 루터만의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는 견해를 반박할 수 없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교회의 교리와 실천 모두에 따르면, 로마교회의 경건은 항상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입니다. 세례 시 받은 은혜를 통하여 인간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공동체에 합당한 존재로 만들 수 있고, 초자연적인 선행을 통하여 영원한 구원에 합당한 존재로 자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로마교에서 성화는 칭의에 선행했고, 인간의 행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선행했고, 공로는 보상에 선행했고, 그리고 윤리는 종교에 선행했습니다. 반면에 루터는 로마교의 이러한 길이 구원과 이에 대한 보장으로 이끌지 못하고, 특별히 바울의 말을 통해 신약에 제시된 복음은 완전히 다른 길을 제시한다는 것을 자신의 회심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복음 안에서,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고 자신과의 교제에 받아들이시고 그의 부성적인 은혜에 동참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오직 이같이 풍성한 선물을 어린아이 같은, 그리고 감사하는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뿐입니다. _122p.
그리스도교 안에서 자란 모든 사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고 결속시키는 것은 인간 마음의 영원한 욕구입니다. 인류는 그 궤도를 따라 발전할 수 있었고, 인간은 항상 동일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의 본성은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나타나며, 그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는 언제나 모든 유한한 존재가 무한하고 영원하신 분 안에 안식한다는 사실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죄를 미워하시고 사악함에서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 위로와 평화가 있으려면, 이 공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또한 죄에 대해 속죄하고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죄책에서 해방해 주시고, 은혜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입양하시는 자비롭고 자비로운 아버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약속하신 것을 실현하실 수 있고, 세상과 인류를 중생과 성화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재창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 마음의 지울 수 없는 욕구이며, 건립된 기념물만큼 확고한 역사적 사실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기독교의 기본 사상이기도 합니다.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혜, 성령의 교통에 대한 사도적 축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공통된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_148-149p.
만약 예수가 그리스도, 아버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가 아니라면 그는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이 경우 예수는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과 동등하며, 모든 윤리 설교자와 동등합니다. 우리의 기독교는 렙시우스(Lepsius)가 말한 바와 같이, 숭고한 율법주의(Sublimer Nomismus)에 불과하며 복음에 대한 유대교의 관점 이상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기독교에 관한 교회의 견해는 언제나 새로운 공격에 직면하지만, 성경의 탐구를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정당화되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시대를 따라 복음에 관해 변화된 견해를 제시했던 역사적 연구의 “역사적으로 진정한 이해”(geschichtlich authentische Verständnis)보다 역사적으로 더 결함이 없다는 것이 항상 증명되었습니다. _187p.